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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여행-이웃공개

이집트 룩소르

by GOLSKI 2006. 6. 29.

4개국 여행코스의 마지막 여정인 룩소르 편

[6월 22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룩소르 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룩소르는 카이로의 남쪽에 위치하며 비행기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이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르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이 거대하게 그 장엄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룩소르는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나눠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 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과 여왕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왕의 묘는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투탕카멘의 영면을 지켜볼 수 있으며, 그밖에 투트모스 3세, 세티, 람세스 3, 6, 9세의 무덤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다. 계곡을 달리하면 여왕의 무덤, 귀족 무덤, 장인(匠人)무덤 등이 있고, 합셰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등이 뜨거운 룩소르 땅가운데 남아있다.



-> 룩소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나일강





룩소르는 인구 70여만명 정도의 도시로서 한국의 경주와 비슷하다.
시 수입의 70%가 관광수입이며 년중 강우량이 '0' 이지만 풍부한 수량을 가지고 있는 나일강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는다.

나일강변 농촌 모습-농지가 끝나면 바로 사막으로 이어진다.





-> 한가롭게 당나귀 달구지를 타고 지나가는 농부의 모습






★ 멤논의 거상

원래 이곳은 제 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으로 자연(지진)과 고대 여행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을 지키는 2개의 거상만 남아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멤논의 거상은 19.5m 높이의 거상으로 2개의 좌상 중의 하나이다.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멤논의 거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 왕가의 계곡

신왕국 시대의 제18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든 일종의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연대로 추정해 볼 때 BC 1600년에서 BC 1200년까지로 이 계곡의 무덤은 일반 피라미드 양식과 조금 다른 암굴을 파서 만든 분묘로 부활을 위해 미이라가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원의 안식처로 이곳을 처음으로 선택한 최초의 왕은 투트모모스1세로 자신의 묘가 도굴되는 것을 막기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가의 골짜기에 있는 많은 묘소들은 대부분 초기에 도굴당하고 하워드 카터가 1922년에 발굴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만이 원상태로 남아있었다. 모든 묘소는 지금까지 64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람세스 2세의 아들과 람세스 2세 그리고 람세스 3세, 4세, 7세, 11세, 세티 1세, 2세, 아멘호텝 2세, 하셉수트 여왕, 투탕카멘 등의 파라오들이 묻혀 있으며 이중 일부만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 무덤 배치도




계곡 입구에서 부터 무덤까지 관광객 운송용 차량 - 이집트 수준에서는 의외의 편의시설이다





-> 메렘푸타 왕의 무덤 입구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로 람세스 2세가 98세까지 살다보니 12번째 아들까지 모두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바람에 13번째 아들이 왕위를 승계했다.

무덤의 장소는 파라오가 직접 선정한다.
초기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이 심하게 도굴되자 이를 막기 위해 동굴 무덤형태로 변화





무덤 내부에는 도굴꾼에 의해 모두 도굴되고 이처럼 석관 하나만 남아 있다.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한국인의 의지(?)를 살려 몰래 촬영함)







★ 핫셉수트 장례신전

하투셉수트 장례신전은 하투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다이르알바리 석회암절벽 바로 아래에 3개의 단으로 건축된 장례신전이다.
이집트 초기의 여왕 하솁수트 장례신전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아직 나이 어린 투트모스 3세의 섭정을 하였으며, 이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장례신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이다. 15-16세기에는 그리스 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고,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 신전의 전체규모를 알아보기 쉽게 현지에서 구입한 사진첩의 사진을 재 촬영한 모습




수백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것임에도 전체모습이 잡히질 않는다.







신전내부에 남아 있는 기둥들 모습






신전에서 바라 본 나일강변 초원 모습






★ 카르낙 신전

아몬대신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르낙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가운데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특히 그 크기에 압도되는 것이 대열주실이다, 입구에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참배의 길, 제1탑문, 제2탑문으로 이어진다. 대열주는 높이 23m, 15m 두 종류의 큰 기둥이 134개나 늘어서 있어 당시의 화려하고 거대했던 신전의 위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합셰수트 여왕과 투트모스3세 두 정적간의 오벨리스크가 나란히 남아있는 카르낙 신전은 고대이집트 시대 이후로 그리스정교회와 이슬람 사원등으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어 그 긴 역사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이유로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 신전내부 18m 높이로 서있는 134개의 기둥들의 우장한 모습들














신전내 벽화-벽에 새겨진 그림들





-> 신전 복원에 열중인 공사현장







-> 돌기둥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가이드의 말에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열심히 돌고 있는 일행들 - 우산속의 주인공들이여 소원이 이루어졌나여???





-> 신전내 오벨리스크

제 3 탑문과 제 4 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동 광장에는 툿투모스 1세의 OBELISK가 있다.(높이 23미터,무게 143톤) -> 사진의 우측

제 4 탑문 안쪽에는 핫셉슈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높이 27.5미터,무게 320톤) ->사진의 좌측

화강암 통돌로 만든 이 오벨리스크들은 총 8~10개가 카르낙신전안에 있었으나 3개 이외는 모두 해외로 유출된 상태(그중 하나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있다)





















★ 룩소르 신전

룩소르의 중심지이고 나일강변에서 돋보이는 장소에 거대한 신전이 있다. 이것이 신왕국시대의 황금기였던 약 200년 사이에 걸쳐 완성된 대신전이며 비교적 모든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형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제18대 왕조 아멘헤테프 3세가 창건, 후에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제1중정을 부설했다. 원래,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됐기 때문에 카르낙 신전과 참배길이 연결돼 있어 왕조 시대에는 매년 신년이 되면 배의 출영식이 성대히 행해졌다.

동 신정은 나일강 동안에 나일강을 따라 남북으로 건축되었으며 폭 40 - 70m 길이 180 - 200m 정도의 규모이며 태양신 AMUN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아래 사진은 사진첩을 재촬영한 것




















엄청남 크기의 신전 입구엔 이렇게 매표소 하나만 달랑 서 있다.




















-> 현지 가이드와 경찰간에 잠시 말썽이 생긴 틈을 타 여유있게 사진 촬영






-> 룩소르 신전을 배경으로 모두 모여 한컷





-> 2인 1조로 30여분 동안 룩소르 시내 시장과 주택가 그리고 나일강변을 마차를 타고 달리는 코스 -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가 반갑게 인사해 주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시장 모습








★ 나일강 뱃놀이






















나일강에 깃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이 두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행복하소서~~











카이로에서 구입했던 파피루스 그림...여러분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했었는데 서울에 와보니 의외로 많이 알려진 상태...표구를 하니 괜찮은 모습이다.











저무는 하루해를 끝으로 우리의 여행도 끝이 났다.

10여일간 4개국을 정신없이 휘돌아 온 것 같은데 평소 찾기 힘든 코스인 관계로 많은 것을 배웠고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울 ~ 프랑크푸르트 ~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 밀란 ~ 이스탄불 ~ 아테네 ~ 카이로 ~ 룩소르 ~ 카이로 ~ 두바이 ~ 서울로 이어진 총 11회의 비행, 그리고 컵라면 안주삼아 팩소주 한잔이 주는 알싸함의 맛은 그곳이 아니었으면 어디서 느낄수 있었을까?

함께 했던 지중해팀(KT-MBA)원들 서로가 깊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었기를 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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